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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不正을 왜 해? 내가 그만둬야 사람 안 다치지” [이주영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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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영 /건국대 명예교수

이승만 대통령은 스스로 물러났다


 4.19당시 이승만 대통령을 하야시키는 데 자기가 결정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주장들이 있다. 그러나 당시 국방장관으로 대통령 곁을 지켰던 김정렬 장군은 이 대통령이 누구의 압력에도 영향을 받지 않고 스스로 하야 결단을 내렸다고 증언한다. 따라서 우리는 이승만을 혁명으로 타도된 독재자로 보는 시각을 수정해야할 필요가 있다. 최근에 복간된 김정렬 회고록 <항공의 경종>(도서출판 대희)에 실린 내용을 유족의 동의를 싣는다.


4월 19일 학생 데모 이후 우리 국무위원들은 줄곧 중앙청내 국무장관실에서 침식을 같이하며 사태 수습을 위하여 노력하고 있었다. 나도 물론 국무위원의 한 사람(국방장관)으로서 거기서 계엄사령부의 보고를 받고 계엄 업무를 지도하며 바쁜 일과를 보내고 있었다. 
마침내 4월 26일 아침이 밝았다. 일어나자 마자 경비실에 가서 밖의 상황을 물어보니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한다. 중앙청으로 와서 세면을 마치고 국무회의실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 데, 소식을 들었는지 국무위원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아침의 평온은 잠시였다. 아침 8시가 지나서 심상치 않은 정보가 들어오더니 9시 무렵이 되니까 종로,을지로 등 시내 중심부가 완전히 군중으로 덮여 있고, 시위대는 서서히 시청 앞으로 몰려오고 있다는 보고가 들어 왔다. 나는 일단 경무대로 가보기로 작정하고, 비상 계엄령 연장에 관한 기안지를 손에 들고 경무대로 향하였다. 
국무회의실을 막 나와서 계단을 내려가려고 하는 데, 갑자기 총무부 직원이 되쫓아 와서 미국 대사관에서 전화가 걸려 왔다고 알려 주었다. 매카나기 주한미대사로부터 걸려 온 전화였다. 
“이승만 대통령을 뵙고자 하니 장관이 알선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니 왜 직접 경무대에 연락하지 않고 나에게 부탁하시는 겁니까?”
“수차 경무대 비서실로 연락하였으나 승낙의 전언이 없었습니다.”
“나는 지금 대단히 바쁘니 기회를 봐서 전언해 드리겠소.”
경무대에 도착해 보니 대통령께서 막 2층 계단에서 내려오시는 중이었다. 대통령께서 나를 보시고 “잘 잤나?”하고 반기셨다. 음성을 들으니 평상시와 전혀 다름이 없었다. 밖의 일을 전혀 모시고 계셨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일단 어제 교수단 데모의 와중에서 이기붕 국회의장 댁이 피습된 것, 계엄사령부가 비상계엄령 연장을 요청한 것, 그래서 국방장관 독단으로 상오1시를 기해 계엄령 연장에 관한 방송을 허락한 것에 대해서 간략히 보고를 올렸다.
대통령께서는 나의 보고를 들으시고 침통한 표정을 지으시더니, 다음과 같이 짤막하게 말씀하셨다.
“그래. 오늘은 한 사람도 다치게 해서는 안 되네.”
나는 대통령께서 하신 말씀의 의미를 잘 알수 있었다. 그것은 내가 12년간이나 가까이 모셔서 그 뜻을 잘 알아들었다기 보다는 4·19 이후 대통령께서 직접 병원에 가서 부상 학생들의 참상을 본 연후에 몇 번이고 말씀하신 것을 잘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왜 이렇게 되었어? 부정을 왜 해? 암 ! 부정을 보고 일어서지 않는 백성은 죽은 백성이지.  이 젊은 학생들은 참으로 장하다!”
대통령의 이러한 말씀을 되새기면서 잠시 회상에 잠겨 있는 순간, 대통령께서는 거듭 “어떻게 하면 좋은가?”라고 물어 오셨다. 
그러자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지면서 무의식 중에,
“각하, 저희들이 보좌를 잘못하여 이렇게 되었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말씀드렸다. 
그러다가 한참 후에 대통령께서는,
“자네 생각은 어떠한가? 내가 그만두면 한 사람도 안 다치겠지?”라고 서너 번 자문자답을 하시더니, 대답을 재촉하셨다.
이때 비로소 내가 머리를 끄덕끄덕 하였더니,
“그래, 그렇게 하지. 이것을 속히 사람들에게 알리려면 어떻게 하지?”
그래서 내가 “성명서를 만드셔서 방송시키도록 하시면 되겠습니다.”라고 말씀드렸다. 
대통령께서는 “그럼 그렇게 하지.”라고 말씀하시더니 박찬일 비서관을 부르셨다.
“내가 그만두면 사람들은 안 다치겠지?”
이 청천벽력 같은 말씀에 박찬일 비서도 판단이 서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러나 박 비서관도 대통령의 거듭된 재촉에 드디어 “예, 저도 그렇게 생각이 듭니다.” 라고 말하였다. 
대통령께서는 곧바로 “그럼 빨리 사람들 한테 알려! 자네들 둘이서 성명서를 만들어 보게나.”라고 지시하셨다. 
박찬일 비서관이 나에게 성명서의 골자를 말해 달라고 하기에, 일단 생각나는 대로 대통령께서 하야를 하신다는 것, 선거를 다시 하신다는 것 등을 말해 주었다. 박 비서관이 이를 받아 쓰려고 하자, 대통령께서는 “자네들 그런식으로 하면 안 돼. 내가 부를 터이니 받아 쓰게.”하시고는,
“나는 해방 후 본국에 돌아와서 우리 여러 애국 애족하는 동포들과 더불어 잘 지냈으니, 이제는 세상을 떠나도 원한이 없다....공산주의에 대하여서는 부단한 주의를 하라”
는 요지의 성명서를 구술하셨다. 이것이 바로 역사적인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 성명서였던 것이다. 

일부 시위대는 이미 선두가 통의동 파출소까지 오고 있을 때여서, 이 성명을 속히 내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중앙청에 있는 최치환 공보실장을 전화로 불러, 잠시 후에 모종의 중대한 성명이 나갈테니 미리 예고 방송을 해 놓으라고 전달하였다. 
박 비서관이 청서를 끝내 정식 재가를 받기 위하여 대통령 집무실로 향하는 도중, 현관에서 새로 외무부 장관으로 임명된 허정씨가 급히 들어오시는 것을 뵙고, 그분께 그간 있었던 일들을 간략히 말씀드렸다. 그리고는 곧바로 함께 대통령 집무실로 들어갔다. 
박 비서관이 (성명서를) 낭독을 한 후에 “발표해도 되겠습니까?” 말씀 올리자, 대통령께서는 “그래, 발표하게.” 라고 허락하셨다. 
그래서 나와 박 비서관은 나오는 즉시로 최치환 공보실장을 전화로 불러 성명서 전문을 낭독하고, 가급적 빨리 효과적인 방법을 다하여 데모 군중이 알도록 발표하라고 하였다. 잠시 후 대통령의 하야 성명은 전파를 통해서 만천하에 퍼져 나갔다. 
잠시후 계엄사령관 송요찬 장군이 경무대 대문 옆 사무실에서 전화를 걸어 왔다.  대학생 대표들이 대통령을 뵙고자 하니 어찌하면 되겠습니까? 라고 문의하는 전화였다. 박비서관을 통해 대통령께 여쭈어 보니 만나보겠다고 허락하셨다. 그래서 나는 송 장군에게 학생 대표들을 데리고 경무대 안으로 들어오라고 지시하였다. 문득 아침에 매카나기 미 대사가 대통령과 접견을 알선해 달라고 부탁한 일이 생각났다. 그래서 박찬일 비서를 통해 대통령께 여쭈니 허락해 주셨다.  
그러고 있자니 송요찬 장군이 학생 대표들과 함께 경무대에 들어왔다. 이와 거의 동시에 매카나기 대사가 미8군사령관 매그루더 장군과 함께 경무대에 도착하였다. 이윽고 대통령께서 학생들과의 회견을 마치고 응접실로 들어오시자, 매카나기 대사는 “이 대통령 각하께서는 한국의 조지 워싱턴 이십니다.”라고 찬사를 올렸다. 
그러자 대통령께서는 천장을 보시면서 우리말로 “저 사람 무슨 잠꼬대야?” 라고 혼자 말씀을 하셨다. 
이미 하야 성명이 나간 후이고, 대통령께서 이렇게 대하자 미 대사는 완전히 무색해져서 별 대화도 없이 잠시 앉아 있다가 돌아가고 말았다. 
성명서가 발표되자 데모대의 대부분은 만세를 부르고 해산하고, 잔류 데모대가 계속 효자동 종점에서 구호를 외치다 하오 4시에 모두 해산하였다.  

대통령의 이러한 위대한 결단은 세간의 의혹처럼 누가 권고해서 한 것이 아니고, 대통령 스스로의 판단에 의한 독자적인 것이었다. 

나는 지금도 다시 그 때를 회고하면서 이승만 박사가 아니었다면 결코 당시의 상황에서 “대통령 하야 성명”이 선포되지 않았으리라고 굳게 믿고 있는 바이다. 




[출처] 뉴데일리  http://www.newdaily.co.kr/site/data/html/2010/08/12/201008120007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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